어제 아침(토)에 문득 이러저러 생각이 겹치면서 예전 일들이 떠올라 페북에 끄적거린 것인데 제법 글이 길어져서 블로그에 옮겨놓습니다. 몇개 되지 않지만 페북 댓글을 보니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시는 분들도 몇분 계시네요.
2005년, 2006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S전자에 다니면서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아마 지금 페친중에 나와 함께 했던 분들중에는 이때 일들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당시에 내가 보시던 임원(상무)이 있었고 이 바로 상사인 전무님이나 주위 임원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었다. (당시 내 입장에서야 그 분들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던 때이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직속 상관인 임원과 전무님 사이에서 나는 졸지에 줄타기와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꾸려가게 된 것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S전자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미팅(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협업솔루션 개발이었다. 그러다보니 프로젝트의 당위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도 참 힘들었고 하드웨어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통합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임원들 사이의 갈등속에서 직속상관의 뜻(!)을 받들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정말로 일을 맡은 나로써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건 겪어본 사람만 안다.)
아무튼 임원이 발의해서 진행한 프로젝트라 전무님도 하지 말라고 강제로 지시를 내리기도 힘든 애매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개발하라고 충분한 예산도 지원해주지 않던 상황이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전무님이 갑자기 따로 나를 호출해서 뛰어갔더니 ‘이거 하느라 얼마썼어? 내가 지시하기전까지는 한푼도 쓰지마! 알았지?’ 이러시는 거다. 이것도 내 직속 임원이 출장중일 때 벌어진 일이다.
임원들 사이의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였고 직속 상관은 만들어내라고 하시고 전무님은 나 몰라라 하시고…
그러면서 나는 주어진 예산없이 10명정도 되는 파트원들을 데리고 자체 개발에 집중하고 (외주 이런거 없고, 디자이너 이런거 없고) 우리들끼리 프로젝트를 꾸역꾸역 진행했다.
왜? 그러라고 만든 팀이였으니까.
아무튼 위산과다 , 소화불량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던 통풍, 류마티즘염증이 나를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부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능력있던 파트원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우연한 상황에서 베타버전도 아닌 것을 보여주고 전무님 인정을 받고 당시 조직의 회의시스템으로 자리를 잡고 다른 사업본부에까지 구축되어서 활용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 우리파트는 어떻게 일을 했을까? 상대적으로 예산도 적고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매우 작지만 어떻게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까?
1. 인적 자원이외에 별다른 예산이 없었고 덕분에 외주를 하지 않았고 내부에서 많은 논의 – 대부분 이 프로젝트 해야하나요? 의미가 있나요? 이런 얘기로 시작해서 그래도 한다고 이것만은 하자라는 – 결과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기능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자의라기보다는 타의에 의해서지만 내부에서는 그럼으로써 더욱 파트원간의 결속력도 강해졌다.
2. 직속상관 이외의 전무님이나 기획, 영업 담당 임원의 지원과 지지를 받지 못한 일이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끓임없이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고민을 반복하고 때때로 이에 대한 대응을 통해서 솔루션에 대한 탄탄한 이론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직접 만들어보고 고쳐보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또 반복될 시간이 충분했다. 왜? 아무도 관심이 없어서 우리끼리 자가발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3. 직속상관이 다소 특이한 경력의 임원분이였기에 일하는 방식이나 진행하는 방식이 앞서 말한 1,2 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방어해주고 보호를 해주셨다. 하지만 덕분에 중간에 낀 나는 도망가고 싶은 적인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4. 마지막으로 운이 따랐다. S전자에서 가장 높은 분들 중 한분에게 선보일 제품, 솔루션을 확인하기 위해서 팀별, 파트별로 10분정도 보고하는 시간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했던 전무님의 질문에 대해서 신들린 듯이 답변을 할 뿐 아니라 그동안 그 분이 지적했었던 것 이상의 준비를 해서 데모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이 보고는 점심시간을 넘어서 1시간 가까이 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솔루션은 데모하는 제품의 후보로는 탈락했다. 당연하지만.)
주위에 스타트업들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듣기도 하고 나 자신도 현재 회사에 합류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잘 해나가고 있지 못해서 늘 자책하지만 늘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 핵심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 당연히 그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
- 반복해서 고민하고 고민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 그리고 운 또는 기회가 왔을때 놓치지 말아야 하다.
예산이 많다고 좋은 사람 많다고 무조건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럴 기회와 확률이 약간 늘어난 것 뿐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이렇게 편하게 얘기를 늘어놓기라도 하지만 어떠한 일을 제대로 해나간다는 것, 어떠한 사업을 관철해 나간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다.
글을 쓰시는 능력도 그리고 실제 경험이나 능력도 엄청 나십니다.
많이 배우고 가게 됩니다. 혹시 오프라인으로 뵙거나 다른 곳에서 Transform같은 발표 진행하시면 한번 꼭 뵙고 싶습니다. 메일 주소와 성함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이미 블로그에 써 있는데요? 이메일주소는 about.me 을 보시면 짐작하실 수 있을 거에요.
진통제 사다드리러 약국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